



영덕군은 지난해 3월 말에 발생한 경북산불 피해에 대한 ‘산불 피해지 조사 및 복구 기본계획 수립 용역’의 최종 보고회를 지난 25일 로하스수산식품지원센터에서 개최했다. 이번 보고회는 관내 산불 피해 면적 1만 6,208ha에 대한 정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올해부터 2030년까지 5년간 체계적인 산림 복원과 산림 자원 활용 방안을 최종 확정하기 위해 마련됐다. 보고회에는 김광열 영덕군수를 비롯해 양성학 영덕군산림조합장, 이상범 영덕군송이생산자협회장 등의 관계자와 경북대학교 한상열 교수, 한국산림복원협회 임주훈 고문 등 20여 명이 참석했다. 중점 내용으로는 영덕군의 핵심 임산물인 자연산 송이의 복원 방안과 주민 안전을 위한 계획복원이 집중적으로 논의됐으나, 현재 영덕군은 산림 전역이 소나무재선충병 반출 금지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현행법상 소나무를 심거나 송이산을 복원하는 것에는 법적·기술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이에 대해 이상범 영덕군송이생산자협회장과 양성학 영덕군산림조합장은 “송이는 군민 생계와 직결된 핵심 자산”임을 강조하며, 법적·기술적 제약을 극복할 연구소 유치나 대체 기술 개발 등 혁신적인 대안 마련을 강력히 주문했다. 전문가들의 심도
청년 예술인들이 펼치는 문화·예술의 축제 ‘영 아트 페스타 & 안·녕·해 아트마켓’이 26일부터 28일까지 사흘간 영덕군 영해면 근대역사문화거리와 예주문화예술회관 일대에서 펼쳐진다. 이웃사촌마을 확산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이번 행사는 전국에서 선발된 청년 예술인들에게 영해면을 기반으로 작품 창작의 기회를 제공하고 주민들에게는 문화예술 향유의 기회를 선사하기 위해 이뤄졌다. 이에 선발된 10명의 청년 예술인은 영해 근대역사문화거리와 골목을 배경으로 전시형 게임과 오디오극을 기획하고, 주민들과의 밀착한 만남을 통해 ‘영해생활기록소’와 같은 공연, 회화, 영상을 완성하는 등 지역이 가진 고유한 장소성과 역사성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작품세계를 선보이게 된다. 행사 첫날인 26일은 개막식을 시작으로 윤여성 작가의 설치 퍼포먼스 ‘파도친다’, 최해인 작가의 오디오극 ‘우담바라’가 26일과 27일 이틀간 관객들을 맞이하고, 이밖에 최차영, 임산하, 홍혜원 작가의 전시가 거리 곳곳의 공간에서 펼쳐진다. 축제의 피날레인 28일에는 영덕무형문화재전수관에서 다채로운 공연과 영상제가 열릴 예정으로, 김수민·김오민·박종경(DJ TIZ) 작가의 역동적인 공연과 함께 김윤
영덕군은 재난으로 인해 피해를 본 주민들의 주거를 안정화하고 체계적인 주택 복구를 지원하기 위해 지난 26일 영덕지역건축사회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으로 영덕지역건축사회는 산불, 태풍, 지진 등 재난으로 피해를 본 주민이 주택을 신축할 경우 기술 상담과 설계·감리비를 기존 금액의 50%까지 감면해 실질적인 부담을 줄이게 된다. 또한 영덕군은 피해 주민의 신속한 주거 복구를 위해 재난 주택과 관련한 건축 인허가 등의 관련 행정절차를 최우선으로 처리하게 된다. 이에 재난으로 주택 신축이 필요한 주민은 관내 읍·면사무소에서 ‘피해사실확인서’를 발급받아 건축사회에 제출하면 협약에 따른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김광열 영덕군수는 “이번 협약으로 단순한 경제적 지원을 넘어 민관이 함께 재난 극복의 의지를 다지는 지역 공동체의 모범 사례가 되길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최선학 기자 kbnews7005@hanmail.net
오는 제107주년 3. 1절을 맞아 1896년 병신창의 당시 나라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청송의병장으로 추대되어 일제 탑압에 맞서 싸우며 나라와 고장을 수호하는데 몸바쳐 헌신한 소류 심성지 선생의 위대한 일생과 구국애향정신을 기리기 위한‘항일의병장 소류 심성지 선생 추모식’행사가 소류선생기념사업회(회장 심상압)주관으로 개최된다. 이날 추모식은 윤경희 청송군수를 비롯한 각계 주요인사와 지역유림, 보훈·문화단체 대표, 학회 회원, 유족, 일반주민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부 추모식과 제2부, 소류 선생의 유학자로서 삶과 가르침, 이란 주제로 특강이 진행될 예정이다. 소류 심성지 선생은 1831년 청송읍 논수리에서 출생하여 12세때인 1843년 둔와 유양흠 선생의 문하에서 학문에 입문한 후 58세때인 1888년 학행이 널리 알려지면서 조정으로부터 의금부도사와 1894년 돈영부도정의 벼슬에 올랐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고 처사형 사림으로 오로지 일평생 학문에만 정진하다가 고종32년인 1895년 명성왕후 시해사건으로 이에 분개한 우리 백성들이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자 이듬해인 1896년 청송 향중의 추대로 청송의병을 창의하여 안덕 감은리 전투에서 큰 전과